[머니투데이 심재현기자]기업자금조달 창구로 승승장구하며 140조원 규모로 성장한 CP(기업어음) 시장이 동양그룹 사태 후폭풍에 흔들리고 있다. 개인투자자 피해를 키운 주범으로 지목되는 CP와 특정금전신탁에 대해 금융당국이 잇따라 규제에 나서면서다. 당장 CP 발행기업들이 눈치보기에 들어가면서 발행만기가 한달새 반토막으로 줄었다.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달 들어 발행된 CP의 가중평균만기(듀레이션)는 58일에 그친다. 이는 2010년 5월 이후 가장 짧은 수준이다. 지난달(101일)과 비교해도 절반에 그친다.
CP 발행물의 만기는 지난해 130일 수준에 머물다 올해 5월부터 시행된 1년 이상 장기 CP에 대한 정부의 규제를 앞두고 지난 2월 234일까지 늘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100일을 넘어 만기 장기화 조짐을 보였지만 지난달말 동양그룹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분위기가 뒤집어졌다.
시장에서는 발행사가 금융당국과 시장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금융당국의 잇단 규제안 발표가 발행만기에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종원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CP 발행잔액이 141조원을 기록하며 증가세가 이어가고 있지만 이는 그동안의 "관성"이 남아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동양사태의 충격은 발행잔액보다 만기 축소 추세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CP 시장에 잇따라 칼을 들이대고 있다. 당장 오는 24일부터는 계열사가 발행한 투자부적격(투기등급) 등급의 회사채나 CP를 계열 금융사가 고객에게 투자를 권유하거나 펀드 등에 편입하는 것이 제한되는 방안이 도입된다.
금융위는 장기 CP 발행 규제를 포함해 CP 관련 정보를 통합 관리하거나 공시할 수 있는 방안 등 CP 발행에 직접적인 규제안을 전면 재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의 신용등급이 바뀌면 기존 CP 투자자에게 고지하도록 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CP를 주로 취급하는 금융상품을 규제하는 우회 방안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 8일 금융위원회가 의결,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되는 MMF(머니마켓펀드) 관련 "금융투자업규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MMF의 가중평균 잔존만기는 다음달 1일부터 현행 90일에서 75일로 15일 줄어든다. 운용사가 MMF 편입자산의 만기를 더 짧게 가져가야 한다는 의미다. 금융위는 직접적인 비율 규제도 도입해 편입자산 가운데 10%는 잔존만기 1영업일 이내 상품으로, 30%는 만기 7영업일 이내의 자산으로 채우도록 했다.
중소형 증권사 한 관계자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유동성 확보를 위해 국공채와 통안채 비중을 늘리고 수익률을 높이는 역할을 해오던 CP 비중은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P 수요가 줄면 자연스럽게 발행물량도 줄 수밖에 없다.
특정금전신탁 규제안이 미칠 타격도 적잖을 전망이다. 금융당국은 특정금전신탁의 최소 계약 기간과 가입 금액을 각각 1년, 5000만원 이상으로 규제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특정금전신탁 투자자가 CP의 위험성을 좀 더 확실히 알고 신중하게 투자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게 당국의 의도다.
전문가들은 발행만기 축소를 시작으로 전체 CP 시장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특정금전신탁과 MMF에 편입된 CP는 각각 51조8000억원, 29조9000억원으로 총 82조원에 달한다. 전체 CP 잔액 141조원의 58.2%에 해당하는 규모다.
오창섭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금융당국이 CP 시장에 직접 메스를 댄 데다 MMF와 특정금전신탁 규제도 CP 시장 규제를 의도하고 있는 만큼 결국은 CP 매수세 위축과 시장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진영 기자 트위터 계정 @zew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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