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사채 투자 정보

[TOPIC]쑥쑥 커지는 전자단기사채 시장 | 편리하고 투명…기업어음 ‘비켜~’

복리의마법 2014. 2. 18.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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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G건설은 지난 2010년 말 1900억원 규모의 기업어음(CP, 잠깐용어 참조)을 발행했다.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빚을 감당할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투자자가 많았지만 어음 발행 과정에서의 절차상 하자는 없었다. 문제는 발행 3개월 만에 터졌다. LIG건설이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기업어음을 인수한 투자자들이 크게 손실을 입었다. CP에 투자할 때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이런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새로 등장한 제도가 전자단기사채(이하 전단채, 잠깐용어 참조)다. 2011년 이명박 정부 시절 ‘전자단기사채법’이 만들어졌고 올해 1월 15일 처음 도입됐다. 올 초만 해도 발행건수가 많지 않았으나 최근 빠른 속도로 기업어음을 대체하며 새 단기자금 조달 수단으로 자리 잡아가는 중이다. 전단채 도입 이후 5년 만에 기업어음을 대체한 일본 사례를 닮아갈지도 관심사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6월 14일까지 전단채 누적 발행량은 2조4300억원을 넘어섰다. 6월 11일 누적 발행량 2조원을 돌파한 이후 3일 만에 300억원에 달하는 전단채가 추가로 발행됐다. 올해 1월 제도 시행 이후 1조원 돌파까지 넉 달 넘는 시간이 걸린 것과 비교해 빠른 속도의 증가 추세다. 최근 현대백화점, 현대홈쇼핑, CJ프레시웨이 등도 전단채 발행을 위한 발행 한도를 설정하고 신용등급도 따냈다. 세 회사는 각각 5000억원, 4000억원, 1000억원 규모의 발행 한도를 설정하고 A1, A1, A2의 신용등급을 받아 전단채 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반면 기업어음 발행은 줄어들었다. 올 초부터 지난 4월까지 월평균 36조3000억원에 달하던 발행액수는 5월 들어 25조9000억원으로 4분의 1 이상 감소했다. 단기자금 조달 시장에서 전단채가 기업어음을 빠르게 빼앗고 있다는 방증이다. 

전단채란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자금을 종이가 아닌 전자로 발행·유통하는 회사채의 일종이다. 법적으로 전단채로 인정받으려면 ‘최소 발행 금액 1억원 이상’ ‘1년 이내 만기’ ‘사채 금액 일시 납입’ ‘원리금 만기에 전액 일시 지급’ ‘전환권·신주인수권 등 주식 관련 권리 부여 금지’ ‘물상(物上) 담보 설정 금지’ 등의 6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이 조건에 비춰 볼 때 전단채는 이론상 1일짜리 등 초단기 자금 조달도 가능하다. 

전단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25개국이 활용할 만큼 인기가 있다. 기업어음과 비교해 장점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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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로만 발행·유통하는 회사채 

기업어음은 종이어음 형태로만 발행해 발행사무가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 반면 전단채는 전자로 모든 과정이 이뤄져 지역 한계가 없다. 또 위조나 변조, 분실 위험이 없다. 기업어음은 실물을 건네야 하기 때문에 증권 발행과 대금 납입 시간이 일치하지 않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가 있는 반면 전단채는 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기업어음과 달리 권면 분할이 가능해 투자자를 찾기 쉬워졌다는 점도 강점이다. 

LIG건설 기업어음 사태가 전단채 발행을 촉진시킨 만큼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도 마련됐다. 무엇보다 이사회 의결을 통해서만 발행할 수 있다는 점도 전단채가 기업어음과 크게 다른 점이다. 기업어음은 이사회의 결의 없이 경영자가 독단으로 발행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재무 상태와 위험 정도를 감출 수 있었다. 이로 인한 투자자 피해도 적지 않았다. 정보 공개량도 기업어음보다 많다. 발행 기업은 한국예탁결제원에 전반적인 발행 내용을 통지해야 한다. 이런 정보는 예탁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금융당국도 전단채 활성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만기 3개월 이내 물량에 대해 증권신고서 제출을 면제해준 것. 단기간에 수시로 발행하는 특성을 고려한 조치다. 또 자금 이동이 편리한 머니마켓펀드(MMF)에 편입시킬 수 있도록 투자 제한도 풀었다. 

증권사나 금융사들이 전단채 발행에 적극 나서는 것도 금융당국의 유도가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증권사의 월평균 단기자금(콜) 차입 비중을 자기자본 25% 이내로 맞추도록 했다. 증권사는 콜 차입을 줄이는 대신 기업어음과 회사채 발행을 늘려왔는데 이제 전단채를 새로운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카드·캐피털사 같은 여신전문금융사도 속도를 낸다. 여신전문금융사는 수신기능이 없어 운영자금을 외부 조달하는 데 기업어음과 회사채에 이어 전단채를 활용한다. 

최근 기업들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전단채도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 발행금리(가격)를 알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발행금리는 기업의 단기 유동성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발행금리가 필요 이상으로 높으면 해당 기업의 단기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는 ‘적신호’로 해석된다. 현재 전단채는 거래금리만 공시되고 기업어음과 마찬가지로 발행금리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거래금리는 증권사 수수료가 포함된 금리라 실제 발행 금액을 알 수 없다”며 “기업의 위험도를 측정하기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은 발행금리 공시를 강제하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발행금리 공개를 꺼리는 기업에 이를 강제하면 전단채를 활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배어 있다. 금융투자협회 측은 “투자자 입장에서는 최대한 발행 정보가 많아야 하고 발행사 입장에서는 최대한 적게 공개하려 하는 만큼 양쪽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이에 대한 타협점은 거래금리만 공개하는 것”이라며 발행금리 공개는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다. 

인터뷰 | 채권 전문가 이창용 현대증권 FICC영업본부장 

“1억원 투자처로도 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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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단기사채는 개인투자자가 목돈 없이도 자금을 굴릴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이창용 현대증권 FICC영업본부장은 개인투자자에게 전단채가 유용한 자금 운용 수단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개인투자자 입장에서 1억원 단위로 투자가 가능한 신상품이 생겼다는 얘기다. 이 본부장은 “3개월 후 주택 마련 자금이 필요하다면 보통 석 달짜리 환매조건부채권(RP·Repurchase Agreement)에 투자하곤 했다. 이제는 전단채 투자가 부각되고 있다”고 전한다. 실제 RP에 비해 전단채의 금리가 훨씬 높다. RP는 국공채 등 안전자산으로 구성돼 있어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다. 전단채는 동일한 금리로 발행된 기업어음(CP)에 비해서도 더 싼값에 살 수 있다. 발행하는 데 드는 비용이 줄어든 덕분에 상품 가격이 내려가게 된다. 

전단채 발행 시장이 문을 연 것은 올해 1월부터다. 본격적으로 발행되기 시작한 것은 5월. 5월 초 CP의 증권신고서 제출이 의무화되며 만기가 3개월 이내인 전단채 발행 수요가 늘어나는 게 눈에 보인다. 이 본부장은 “CP를 발행하려면 감독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발행자 입장에서 이런 절차가 불편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발행이 편한 전단채로 옮겨갈 것”이라고 말한다. 업계는 기업이 만기 3개월 이하 자금을 조달하려면 전단채를, 3개월에서 1년짜리 만기는 CP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게 하는 것이 정책 당국의 기본적인 방향이라고 해석한다.

“아직까지 전단채 발행 초기 단계로 시장이 서서히 적응해 가는 중입니다. 전단채도 채권의 한 영역이고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잠깐용어 *전자단기사채 

기업어음(CP)을 대체하기 위해 도입된 전자 방식으로 발행되는 금융상품. 

잠깐용어 *기업어음(CP·Commercial Paper) 


기업이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발행하는 어음 형식의 단기채권. 1981년 기업의 단기자금 조달을 쉽게 하기 위해 새롭게 도입했다. 

[명순영 기자 msy@mk.co.kr 서은내 기자 thanku@mk.co.kr / 일러스트 : 정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