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심재현기자]동양그룹 회사채가 불티나게 거래되고 있다. 금융계열사를 제외한 주요 계열사가 일제히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가운데 위험한 베팅이 이뤄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거래가 정지되는 주식과 달리 일반 회사채는 계속 거래된다.
1일 시장의 예상을 깨고 전격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시멘트가 발행한 회사채는 이날 하루만에 116억원 어치가 거래됐다. 지난 9월 한달 동안 거래된 동양시멘트 회사채 전체 규모(168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지난달 하루 평균 거래량(9억원)의 13배에 달한다. 하루 앞서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이 발행한 회사채도 이날 하루 동안 17억원 어치가 거래됐다. 지난달 하루 평균 거래규모는 5억원에 그쳤다.
투자자와 투자수요가 충분한 주식시장과 달리 채권시장에서 체결되는 회사채 거래는 많지 않다. 이를 감안하면 이날 동양그룹 회사채 거래량은 전문가들도 놀랄만한 규모다. 채권시장에서는 한 번 산 채권을 유통시장에서 되팔고 이를 사는 거래수요 자체가 주식시장에 비해 현저히 적다.
㈜동양 회사채만 해도 지난달 23일 오리온그룹의 지원 불가 발표로 자금 위기가 급물살을 타기 전까지 하루에 2억~5억원 거래되는 데 그쳤다. 동양시멘트 회사채 역시 이때까지만 해도 하루 거래량이 1억~3억원 수준에 불과했다.
시장에서는 최근 동양그룹 회사채를 집중적으로 사들이는 세력으로 일부 개인투자자를 꼽는다. ㈜동양과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원금 회수 가능성이 떨어지면서 회사채 가격이 급락했지만 앞으로 긍정적인 뉴스가 나오면 다시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위험을 무릅쓰고 베팅하는 투기세력이 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미 적잖은 손실을 입은 개인투자자들의 "물타기" 거래 우려도 나온다. 원금 손실이 불가피해졌지만 급락한 회사채를 사두면 혹시라도 앞으로 전개되는 상황에 따라 원금 회수율이 올라가 전체 손실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다.
이를테면 지난해 9월말 법정관리를 신청했던 웅진홀딩스는 법정관리 직후만 해도 회사채 투자자의 원금 회수율 전망이 20%에 머물다 최근 70%까지 올랐다.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직후 액면가 1만원짜리 회사채를 2000원대에 2000만원어치 샀다면 1년만에 5000만원 가까운 수익을 올리게 된다. 동양그룹 회사채도 이날 2000~4000원대 수준에서 거래됐다.
하지만 동양그룹은 웅진그룹과 상황이 다르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웅진그룹 회사채는 법원의 회생절차 과정에서 우량기업인 웅진코웨이 매각이 원활하게 이뤄지면서 원금 회수율이 높아진 이례적인 경우라는 것.
김은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마다 향후 원금 회수율에 대한 전망이 다르기 때문에 법정관리 신청 기업의 회사채도 거래가 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법정관리 기업의 회사채는 회수율이 20~30%에 그친다"고 말했다.
특히 동양그룹은 최근 몇 달 전부터 계열사간 "CP(기업어음) 돌려막기"로 근근이 버텨왔을 정도로 자금 사정이 안 좋은 데다 남은 자산도 대부분 금융권 담보가 설정돼 법원의 자산 매각 과정에서도 유입되는 현금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법정관리 상태에서는 담보채권이 1순위 상환 대상이기 때문에 동양그룹이 발행한 무담보 채권인 회사채 등은 2순위로 밀려난다. 채권단인 은행 등이 담보권을 행사해 담보채권을 상환받고 나면 회사채 투자자들에게 나눠줄만한 자금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더구나 회생절차가 승인되지 않아 파산절차를 밟을 경우 투자자들이 회수하는 원금은 더 줄어든다. 2011년 법정관리를 신청한 대한해운의 경우 파산절차를 거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회사채 3800억원 가운데 투자자가 돌려받은 현금은 10%에 그쳤다.
시장에서는 동양그룹 회사채 거래량이 웅진이나 STX 등 최근 1~2년 동안 진행된 법정관리 기업과 달리 유난히 증가세가 큰 데도 주목하고 있다. 그만큼 동양그룹 회사채가 개인투자자에게 많이 팔렸다는 분석이다.
동양이 발행한 회사채 8801억원(지난달 29일 기준) 가운데 동양증권을 통해 개인투자자 2만7981명이 7989억원 어치를 사들였다. 99% 이상이 개인투자자 보유분이다. 한 시장 관계자는 "알만한 대기업 그룹 계열사가 줄줄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변동성을 노린 투기성 자금이 몰린 것 같다"며 "자칫하다 동양그룹 회사채가 다시 한 번 개미들의 무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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