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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들 금리인상 극약처방 잇따라… 外資 이탈 막아낼까

복리의마법 2014. 2. 3. 08:22


[美 양적완화 추가축소… 설연휴 신흥국 금융시장 요동]

터키 5.5%p·남아공 0.5%p↑ 외국인 자금 이탈 막기 안간힘
외자 유입 중단 '서든 스톱', 브라질 등 4개국 가장 위험
"자국 경제구조 개혁에 돈 쓴 폴란드·멕시코는 괜찮을 것"

"썰물이 빠져나갈 때에야 비로소 누가 벌거벗고 헤엄쳤는지 알 수 있다."

투자의 귀재로 불리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의 이 말은 현재 신흥국 경제 상황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는 지난달 29일 현재 750억달러인 채권 매입 규모를 2월부터 650억달러로 축소하기로 결정했다. 작년 12월에 이어 두 달 연속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직접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금리를 낮추는 것)의 규모를 줄인 것이다.

아르헨티나 194개 생필품 가격 동결… 전국으로 확대 지난달 29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시민이 ‘월급만 빼고 모든 게 올랐다. 당장 월급을 올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최근 통화가치 급락으로 물가가 치솟자 전국에서 판매되는 194개 생활필수품의 판매 가격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르헨티나 194개 생필품 가격 동결… 전국으로 확대 지난달 29일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한 시민이 ‘월급만 빼고 모든 게 올랐다. 당장 월급을 올려라’고 쓰인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최근 통화가치 급락으로 물가가 치솟자 전국에서 판매되는 194개 생활필수품의 판매 가격을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뉴시스·AP
양적 완화라는 극단적 통화정책에 대반전이 시작되면서 신흥국들의 취약한 펀더멘털(경제의 기초체력)도 적나라하게 노출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가 1월에만 18.7% 폭락한 것을 비롯, 터키(4.8%), 남아공(5.6%) 등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겪어온 국가들이 외환위기 직전의 상황에 몰려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테이퍼링발 신흥국 위기의 끝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미국·유로존·일본 등 선진 경제권에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기 때문에 신흥국 위기가 선진국으로 전이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과거 금융위기의 경험으로 볼 때 한번 시장에 패닉이 발생하면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전했다.

진퇴양난의 신흥국 경제

터키와 남아공, 인도 등 신흥국들은 외환시장 방어를 위해 공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고 있다. 터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4.5%에서 10%로 5.5%포인트 인상했고, 남아공(5%→5.5%)과 인도(7.75%→8%)도 금리를 올렸다. 더 높은 이자를 줘서라도 외국인 자금 이탈을 막겠다는 안간힘이다. 이에 따라 여전히 제로금리를 유지하는 미국·일본·유로존 등 선진 경제권과 공격적인 금리 인상을 단행한 신흥국 간의 금리 차이가 벌어지는 금리단층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 테이퍼링에 따라 부각되는 금리 단층 그래프
하지만 금리 인상엔 후유증이 따른다. 가계와 기업의 이자 상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가계부채의 부실과 기업의 도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지난달 31일 보고서에서 "터키의 금리 인상으로 리라화 변동성이 축소되고 국가신용등급의 하락 압력이 낮아지겠지만, 성장률 역시 둔화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확대되는 신흥국 살생부

작년 말까지만 해도 신흥국 위기 명단엔 인도·인도네시아·터키·브라질·남아공 등 프래자일 5(fragile 5·깨지기 쉬운 5개국)의 이름만 올라갔었다. 하지만 신흥국 위기가 확산되면서 이들 5개국에 헝가리·칠레·폴란드를 묶은 E8(edge 8·벼랑 끝 8개국)이란 용어가 등장했다. 1월 말에는 모건스탠리가 브라질·남아공·터키·우크라이나 등 4개국을 서든스톱(해외투자자금 유입이 갑자기 중단되는 현상) 위험이 가장 높은 국가로 꼽았다.

서든스톱은 지난 1995년 MIT 교수였던 고(故) 루디거 돈부시가 멕시코 페소화 가치 붕괴를 다룬 '통화위기와 붕괴'에서 처음 쓴 용어로, 선진국의 통화긴축 등으로 신흥국으로의 자본유입이 급감하거나 중단돼 경제위기로 이어지는 현상을 뜻한다. 또 인도·인도네시아·멕시코·태국도 이머징마켓에서의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면 피해를 입을 국가군에 포함됐다.

신흥국의 경제위기가 거꾸로 선진국으로 확산되는 역(逆)스필오버(spillover·국경을 넘어 위기가 전염되는 현상)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신흥국발 위기에 대한 우려로 인해 연준이 2차 테이퍼링(tapering)에 착수한 29일부터 3일간 뉴욕 증시가 1.4% 하락한 것을 비롯, 영국(-0.9%), 프랑스(-0.5%), 독일(-1.1%) 등 선진국 증시가 동반 하락했다. 선진국으로 위기가 전이될 경우 신흥국으로의 수출 비중이 높은 유로존 국가들이 첫 번째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로이터통신은 "유럽 기업들은 전체 매출 중 신흥국 비중이 23%로 일본이나 미국 기업(14%)보다 높기 때문에 더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테이퍼링발 신흥국 위기는 이제 시작이란 관측이 많다. 미 연준은 올해 남은 7차례의 통화정책 결정 회의에서 추가적으로 테이퍼링에 착수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리처드 피셔 미국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폴란드와 멕시코처럼 값싼 자금을 자국의 경제 구조 개혁에 사용한 국가들은 (테이퍼링에도) 괜찮을 것이지만, 이 돈을 소비에 쓴 브라질 같은 국가들은 어려운 시기를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